어쩌면 좋아. 나는 조선시대의 가족 개념에서 머물고 있다. 숭조사상의 가르침을 받았다 보니 나의 머릿속은 온통 유교의 세상에서 머무른 것 같다. 명색이 현대 교육을 받았다고 하지만 어릴 때 어른들로 부터 물려받은 가르침은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점이 많다. 나의 몇 대조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셨고 그 어른의 사상 이랬다는 걸 자식들에게 전하고 있다. 물론 현대사회에 적용해도 좋은 것들이긴 하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제도는 그걸 수용하기에 갈등의 소지가 많다. 특히 혼인과 제례 등에서 두드러진다. 고부간의 갈등은 시집살이가 예나 지금이나 있다. 나이 먹은 시어머니는 숨도 못 쉬고 시집살이 했는데 그걸 현대교육 받은 며느리에게는 씨알 먹히지 않는다. 결혼과 동시에 분가는 당연하다. 남편과 오손도손 살면 되지 시부모 모시기는 싫다는 것이다. 내가 왜 피한방울 안 섞인 시부모를 내 친부모에게도 하지 않는 봉양을 하느냐. 시댁식구들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자식도 아내 편들지 부모편이 아니다. 내편이라고 믿는 부모들은 속마음은 모른다. 그래서 요사이 시부모도 함께 살기도 싫어한다.
제사나 차례도 갈등의 중심이다. 며느리는 알지도 못하는 시집 조상들을 왜 모시느라 개고생 하느냐. 주장에는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니다. 시부모는 그 일을 아무소리 못하고 한평생을 했는데 못마땅하기가 짝이 없다. 분란이 일어난다. 가족이 파탄되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나는 조선시대 가족 공동체를 일부는 유지한다. 자식 결혼할 때부터 한집에 살고 있다. 손주들의 보살핌도 우리가 한다. 며느리가 신입사원 교육에서 자기 소개하는 시간에 결혼 15년차로 시무모와 함께 여섯 식구가 산다고 하니 결혼하지 않은 신입 사원들이 “헐”이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탄성을 지르더란다.
이제는 제사도 간소하게 차린다. 내년부터 차례는 식구들이 먹고 싶은 것을 반영하여 차롓상을 차리려 한다. 결국 그날 자손들이 먹을 음식인데 그것이 옳을 것 같다. 피자나 바나나 커피라도 좋다. 내 손자들이 먹고 싶다면 조상님들도 좋아 하실거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친인척들 뭔 짓거리냐고 난리날거다. 속으로는 괜찮은 발상이라고 하면서도 말이다. 나는 조선시대 사고의 사람에서 벗어나려한다. 이것이 개혁인가 ? 패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