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을 보며 우리가 임진왜란을 복기하듯, 후세에도 세월호 참사를 보며 (이 시대를) 복기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말하자면 세월호 징비록, 이런 기록이 꼭 있어야 됩니다."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1542~1607)의 한문 기록 <징비록>을 우리말로 옮긴 김기택 시인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금 우리 사회와 <징비록>의 배경인 임진왜란 당시 상황이 매우 비슷했다고 말했다. 두 시대 모두 선장과 왕이란 책임자는 사건을 예고하는 신호를 무시했고 이후에는 도망갔다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 관료들 역시 수습 과정에서 비겁함과 무능함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