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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05 13:30
[이창형 교수] '을'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
 글쓴이 : 주노
조회 : 1,829   추천 : 0   비추천 : 0  
□ 초빙칼럼 
                                                                                                    이창형.jpg
                                                                                                  이 창 형
                                                                                                   울산대 교수
 
‘을’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
 
 
지난해 5월 남양유업(주)의 젊은 사원이 대리점 사장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는 동영상이 인터넷을 타고 세상에 공개된 이후,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을관계’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갑을관계’란 도대체 무엇인가? 원래 갑을관계(甲乙關係)란 민법상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의 주체인 두 당사자를 편의상 갑(甲)과 을(乙)로 부르는데서 유래된 것으로서 계약당사자 간의 법률관계를 말한다. 여기서 계약(契約)은 2인 이상의 대립하는 의사표시의 합치에 의해 일정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킬 목적으로 하는 법률행위로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법률행위이다.
 
우리 민법(民法)은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자유의 원칙과 신의성실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사적자치(私的自治)의 원칙에 따라 계약당사자는 자기의사에 따라 자율적으로 계약을 체결하며, 국가는 여기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주의를 계약자유의 원칙이라고 하며, 이에는 계약체결의 자유, 계약상대방 선택의 자유, 계약내용 결정의 자유, 계약방식의 자유 등 4가지를 포함한다. 그리고 신의성실의 원칙(信義誠實의 原則, in good faith)은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상대방의 신뢰에 반하지 않도록 성실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법원칙이다. 민법은 이 두 원칙에 반하여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계약 자체를 무효(無效)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용계약이나 도급계약 등 일부 계약관계에 있어서 평등해야할 ‘갑을관계’가 언제부터인가 불평등계약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두 계약당사자 중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갑’이 일방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있는 ‘을’에게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요하고, 이 계약에 따라 ‘을’을 마치 종속관계에 있는 사람처럼 부려먹는 관행이 생겨난 것이다. ‘갑의 횡포’라고 부르는 이러한 부당, 불법행위(계약자유의 원칙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함)가 합법의 탈을 쓰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에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각종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고 있으며, 심지어 ‘을’이 ‘갑’으로부터 인권을 유린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갑’의 횡포가 사적(私的)인 계약관계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상거래, 민원, 직장 등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상적으로 횡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서비스업체와 고객, 공무원과 민원인,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선생님과 학생 등 도저히 법률관계로는 규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그야말로 순수한 인간관계에서도 ‘갑’의 횡포가 자행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엄밀히 말해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갑’ 즉 대기업, 서비스업체, 공무원, 직장상사, 선생님 등이 오히려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을’ 즉 협력업체, 고객, 민원인, 부하직원, 학생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경제적 이익을 사취하거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니 이야말로 주객전도(主客顚倒)가 아닐 수 없다.
 
사실상 우리 사회에 ‘갑을관계’가 관습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이 유학(儒學)을 통치철학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의 관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고, 어떤 학자들은 한일합방 이후 일본의 강압적인 무단정치(武斷政治)에서 그 근원을 찾기도 한다. 보다 직접적인 원인으로 제3공화국 이후 수출중심의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소수의 대기업이 다수의 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을 받아 수출하는 ‘수요독점형’ 구조가 형성되면서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지적을 받아들여 1980년에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경제운용의 틀을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전환하고 공정한 경쟁원리를 도입하여 시장기능을 활성화 시키려고 시도하였으나 ‘갑을관계’가 쉽게 시정되지는 못하였다.
 
그 연유야 어떠하든 우리 사회에 여전히 ‘갑을관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심히 마음을 어둡게 한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경제가 계속 성장하는 시기에는 ‘갑을관계’라는 나쁜 현상이 가시화되지 않고 잠복해 있다가 경제가 어려워질 때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가 호황을 보일 때에는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경제성장에 따라 발생한 경제적 이익을 향유할 수가 있기 때문에 ‘갑’의 횡포를 어느 정도 용인하면서 지내지만, 불황기에는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잠복해 있던 ‘갑을관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글로벌 신용위기(信用危機) 이후였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신용위기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의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렸고, 그 여파는 실물경제로까지 번져 글로벌경제는 유례가 없는 경기침체기에 돌입하였다. 이후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인하여 국내는 물론 해외로부터의 수요(需要)가 급감함에 따라 호황을 보이던 수출이 부진하고 국내 생산마저 위축됨에 따라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결국 수익성이 악화된 대기업들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대안으로 비용절감을 최우선과제로 삼았고, 그들은 자신들의 비용을 절감하는 대신 협력업체들로 하여금 계약단가를 인하할 것을 강요하게 된다. 수요 부진에 계약단가마저 인하함에 따라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중소협력업체들이 대기업의 일방적이고 부당한 횡포에 반기(反旗)를 들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갑을관계’로부터 발생하는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해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공정거래법>을 보완하는 가칭 <갑을관계개선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정부에서는 계약서에 ‘갑을관계’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이러한 대안들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는 이들을 규제할 법이나 규정이 없어서 ‘갑을관계’가 횡행하였는가? ‘갑’ 이나 ‘을’이라는 호칭을 없앤다고 ‘갑을관계’가 사라진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가? 궁극적으로 ‘갑을관계’의 개선은 정직한 사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공동체의식의 개혁을 필요로 한다. ‘갑’과 ‘을’이 상호신뢰 하에서 동반자적 관계를 갖고 상생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가 바라는 공정한 사회, 즉 ‘을’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가 이룩될 것이다.
 
 
<프로필>
 
-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 수필가
- 1955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하였으며, 경북사대부고와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공군사관후보생으로 임관하여 공군대위로 전역하였으며, 이후 한국은행에 입행하여 주로 외 환 및 국제금융 분야에서 근무하였다. 국장(1급) 승진 후 한국은행 외환조사실장 및 울산본 부장을 역임하였으며 2013년 3월에 정년퇴임하였다. 현재 울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하고 있으며, 수필가, 칼럼리스트, 관광통역안내사, 200만 울산포럼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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