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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14 16:10
[최종관] 전통 옻칠공예 채화칠기 가족
 글쓴이 : 주노
조회 : 1,668   추천 : 0   비추천 : 0  
  
                                                                                                최종관.jpg
                                                                                              최 종 관
                                                                                               채화칠기 작가
 
전통 옻칠공예 채화칠기 가족
 
 
말 그대로 새까만 칠흑(漆黑) 속에 갖가지 문양이 피어나 있다. 고려청자의 비색(翡色)을 띤 연초록 학은 천 년 전 고려시대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것처럼 흑칠 위를 날고 있다. 미백의 매화도 붉은 눈꽃문양도 칠흑이라는 무대위를 수놓고 있는 배우들이다. 천 년을 이어온 한국의 채화칠기, 40년 동안 맥을 이어가고 있는 나와 나의 가족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43년 동안 칠기장의 외길을 걸었고, 이제 국내외 전문가들이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의 채화칠기 대표 명인이 되었다. 정부가 인증한 채화칠기 기능전승자이기도 하지만 내가 운이 좋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내가 작업한 작품은 아내와 아들 딸 온 가족이 함께 만드는 공동 작품이다. 자손에게 대대손손 전승하는 문화가 사라진 한국 공예바닥에서 나는 누구보다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웃나라 일본 공예가의 경우 짧으면 5, 길면 15대 이상, 아버지에서 아들로 기술을 전수 하고 있는 반면에 기반이 완전히 붕괴된 한국공예는 소명감을 지닌 공예가문이 필요했다. 생계를 위해 아내가 채화칠기에 입문하면서 아들이 4살 되던 해에 크레파스를 쥐어 주면서 미술공부를 시켰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는듯하였으나 가족 간의 갈등도 적지 않았다. 컴퓨터 진학을 꿈꾸던 아들과 진학을 앞 둔 딸에게 내가 내다본 머나먼 비젼을 제시하며 몇 년간 설득을 하였다. 어떻게 보면 강제적이지만 내가 내다보는 머지않은 미래에는 채화칠기가 꽃이 필 것을 예감했다. 이로써 아들은 배재대 칠예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통영옻칠미술관 학예사로도 근무했고 지금은 작업실에서 함께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딸 역시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전통공예 이론을 전공하고 고궁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작업실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2011년에는 가족전도 가졌다. 아들과 딸의 손을 거치면서 젊어진 작품은 전통미를 겸비한 현대미로 활용도를 한층 높였으며, 아내 역시 현대 식생활에 어울리는 그릇 작품을 제작 하였다. 가족 전에 전통협회와 언론인, 관람객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그 어떤 이슈보다 작품의 완성만이 관심거리인 사람들에게 작품으로 보답하였다. 60년 회갑을 기념하며 오픈한 전시임에 나에게 있어서는 가족과 함께여서 더욱 뜻 깊고 감격스러운 자리였다. 또한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갈고 닦아온 40여년 세월에 가치를 빛나게 해주는 듯 소박한 행복마저 느꼈다.
자개를 사용하는 나전칠기와는 달리 채화칠기는 옻칠에 광물성 안료를 섞어 색을 낸 다음 세필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다. 우리나라 채화칠기 기법은 출토된 유물로 보아 고려 나전칠기 보다 시대를 앞선다. 화려한 나전칠기 부흥에 가려져 채화칠기는 그 맥이 단절돼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태희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채화칠기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선생님은 칠공예의 다양한 기법에 능하지만 나전칠기 분야에선 그 누구보다 특징을 가진 선생님이다. 나전을 선으로 가늘게 오려 낸 다음 각종 색칠로 표현한다는 자체가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정확하고 우아한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수려한 솜씨를 가진 일본 장인들도 혀를 내두를 만한 분이셨다. 그만큼 우리의 것을 가장 큰 자부심으로 알았던 분의 제자로써 채화칠기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채화칠기하면 아무래도 섬세함을 빼 놓을 수 없다. 여성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아름다운 작품들과는 달리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예전만 해도 대부분 남성들이었다. 그 이유는 옻칠을 하는 과정이 어렵다 보니 여성들은 힘에 부치기도 했고 고가의 재료값을 감당할 수도 없었다. 나무로 짠 골격(백골)에서부터 천과 한지를 붙이고 토회칠(황토+생옻칠)로 평면을 맞춘 다음 30여 번의 갈고 칠하는 과정이 있다. 단순한 마음가짐으로는 이 모든 과정을 마무리 할 수 없다. 하나하나 모두 수작업으로 이어지며 과정을 허투루 해서는 금방 표가 나기 때문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지극한 인내심의 달인이 아니라면 작품을 내기 힘들다. 현재 우리나라에 채화칠기를 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채화칠기 맥을 이어갈 기능자 양성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쓴다. 힘들기도 하고 수익창출이 어렵다보니 선뜻 하겠다고 나서는 이도 없다. 이러다 맥이 끊어지겠다 싶어 두 자녀와 아내가 채화칠기를 전승받도록 설득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의 것을 이어가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까지 바쁜 시간 시간을 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배제대학에 나가 채화칠기를 가르쳤다. 현재는 갤러리에서 수강생을 받아 일반인과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 중이다. 기능을 전수 받기보다는 채화칠기의 매력에 빠져 기법을 배우고자 하는 성인들이다. 지금은 수강생 대부분이 여성들이며 칠기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서 각광받고 있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찾아와 이곳에서 열정을 쏟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뿌듯하다.
 
앞으로 채화칠기는 국내외에서 각광받을 가능성은 물론이며, 그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우리 것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아직 부족하고 또 좋다는 것은 알지만 어딘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하면 현대화된 우리 생활에 접목할 건지가 연구대상이다. 무조건 옛것 그대로가 아니라 옛날 그 규격과 모양은 그대로 재연하되 실용성과 편리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갤러리 초이에 전시하고 있는 관복함은 옛날 관복을 넣어 두던 함이다. 그러나 이 관복함이 조선시대 안방 어딘가에 있다면 어울릴까하는 의문이 든다. 이미 우리가 사는 구조는 입식으로 서구화 되어 있는데 옛것만 고집한다면 조화가 깨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다리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다리를 달았더니 아파트 현관 입구에 놓아도 손색이 없는 콘솔이 되었다. 이렇듯 옛것의 기법과 형태를 살리면서 현대 생활에 맞게 디자인을 한다면 구식이 아닌 세련되고 현대화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溫故知新, 옛것에 얽매어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킬 것은 지키고, 바꿀 것은 바꾸면서 그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채화칠기를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다. 20148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한국 방문으로 준비가 떠들썩했던 와중에 문화부로 부터 교황님 선물을 의뢰 받았다. 한국 전통공예를 대표할만한 작품을 만들고자 채화칠기로 한국적인 멋을 살린 교구함을 제작했다. 단순한 선물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교황의 방한에 채화칠기가 선물로 지정이 되었다. 채화칠기는 그만큼 전통공예 안에서 자리를 잡았으며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초석을 다지고 있는 셈이다.
 
또한 올해 12월에는 미국 콜로라도 주에 위치한 덴버미술관에서 우리 가족을 초청했다. 덴버미술관은 전 세계 각국의 소장품을 가진 곳이다. 이 미술관에 2014년 한국대표로 우리 가족이 가서 채화칠기 강연을 하게 되었다. 세계에서 먼저 손을 내밀고 있으며 지금껏 지켜오던 것을 전 세계인들에게 당당히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우리의 전통공예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시기가 점점 빨리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만큼 우리는 더욱 우리 것을 지키면서 성장해 나아갈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시장을 하나 갖는 것이 꿈이었다. 단순히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내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그 꿈을 이뤘다. 물론 작은 건물 1층을 개조하여 조그마한 갤러리를 냈지만, 다음 목표는 더 큰 채화칠기 미술관을 개관하는 것이다. 사라져 가는 채화칠기 전통공예를 한국의 대표 공예로써 미술관까지 세우고 전 세계에 우리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알릴 수 있다면 그 또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닌가. 채화칠기가 내가 있는 세대에서 멈추지 않고 아들딸과 후손들에게 까지 이어지며 세계적인 작가로 커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꿈을 그려 본다.
 
 
<프로필>
 
- 채화칠기 작가 : 최종관(崔鐘官)
- 대한민국 디자인 전람회 초대작가
- 채화칠기 연구소, 갤러리 초이 운영
- 대한민국 채화칠기 기능전승자
-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국무총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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