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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06 13:29
[송연우] 나는 쓸모 있는 사람입니까?
 글쓴이 : 주노
조회 : 1,719   추천 : 0   비추천 : 0  
  초대작가
   
                                                                                                송연우.jpg
                                                                                                송 연 우
                                                                                                 작가
나는 쓸모 있는 사람입니까?
 
 
쓸모 있는 사람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든 문제는 대학 전공 선택에서부터 시작됐다.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하고 자주 몽상에 빠졌던 갓 스물의 여자아이는 대입을 앞두고 주저 없이 인문학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이후 내 삶은 아주 피곤해졌다.
 
세상의 모든 것은 쓸모를 기준으로 가늠되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할 때 그것이 어떤 유익이 있는지, 더 정확하게는 어떤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를 궁금해 했다. 전공을 묻는 이들에게 나는 수업시간에 배운 가족소설이론이 최근 출간된 소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들은 불문과를 졸업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연봉 얼마짜리 직장을 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그런 사회 안에서 자랐다. 쓸모 있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사회. 공부도 경제적 가치를 높여줄 도구에 불과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쓸모 있는 모양새를 갖추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다른 학우들이 경제신문기사를 읽을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었기 때문이다. 취업을 앞두고 친구들이 경력을 쌓자며 대기업의 무보수 일꾼을 자처했을 때 도서관에 앉아 칸트의 숭고함에 대해 기술한 책을,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 따위를 뒤적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준에서 유용한 가치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진학을 위해 경제력을 갖춰야 했으므로 하는 수 없이 취업시장에 내몰린 시절, 몇 차례 큰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면접관 앞에서 나는 작은 존재였다. 면접관의 눈에 들기 위한 기준이 다른 이들에 비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까스로 취업한 회사에서 나는 나의 무쓸모를 경험해야 했다. 당연한 이야기일 테지만 내가 배운 문학이론, 예술철학 등은 회사업무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피로를 권하는 사회
오늘의 우리는 몹시 피곤하다. 좋은 성적을 위해, 더 나은 연봉을 위해, 더 좋은 외모를 갖추기 위해 그래서 남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하루 종일 정신없이 살아온다. 피로에 지친 하루를 위무하려 잠시 티비를 틀지만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광경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일명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은 어느 덧 방송사들의 고정 편성물 중 하나가 되어 우리네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쓸모를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한 경쟁. 여기서 유리한 건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등을 잊는 것이다. 얼마 전 용기를 내어 경제적인 부유함보다 숭고함을 안겨주는 가치에 몰두하고 싶다고 고백하는 내게 몇은 고개를 저었고 솔직한 몇은 이렇게 묻기도 했다. “문학? 그게 밥 먹여주니?”
 
 
문학의 쓸모, 문학가의 쓸모
한국문학 역사상 가장 저명한 비평가인 고 김현선생은 <한국문학의 위상>이라는 책에서 문학의 쓸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가 있다. 그는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고 말하면서 문학이 우리의 물질적인 삶을 돌보아주지 않는다고 일축한다. 그러나 다음 순간, 선생은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므로 인간을 억압하지 않으며 그 대신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고 덧붙였다.
 
쓸모 있는 것들은 유용성을 전제로 우리의 삶을 집요하게 간섭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쓸모 있음을 얻기 위해 시간, 노력, 건강 등을 억압당한다. 하지만 쓸모가 없는 문학, 예술은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안아준다, 휴식을 허락한다. 일상의 치열함과 무기력함을 견디게 할 대안은 먹는 밥이 아니다. 눈으로 읽어서, 귀로 들음으로 채워지는 정신의 밥. 이것이 우리를 억압에서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회사 사무실에서 복사기를 만지다가 문득, 언젠가 나를 사로잡았던 시구 하나를 떠올렸다.
십 년을 살면서 초가삼간 지어 냈으니
나 한 간, 달 한 간, 맑은 바람 한 간을 맡겨 두고
강산은 들일 곳이 없으니 이대로 둘러 두고 보리라
 
복사기와 전화기의 소음 속에서 송순의 시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이미 울창한 산 속 어딘가에 있었다. 깎아질 듯 가파르고 웅장한 산, 그 중간 어디쯤에 아무렇게나 뚝딱뚝딱 나무로 지어낸 집 마루, 그 위에 누워 적막하고 고요한 달의 풍경과 한 밤의 미풍을 느끼는 어떤 사람. 여기까지 그리고 난 뒤, 나는 더욱 문학의 쓸모를 확신했다. 문학과 예술이 지금 당장 나의 쓸모가 아니어도 좋다. 그래도 나는 더 나은 글을 생각하고 쓰기 위해 나의 유용성을 기꺼이 억압하겠다.
 
언젠가 피로에 지친 당신에게 나의 문학은 위로를 건넬 것이다. 아마 그때, 당신은 나를, 나의 글을 매우 쓸모 있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프로필>
 
- 눈이 무섭도록 내린 강원도에서 태어나 남들보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성을 가진 전천후 작가.
-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다 문학예술에 매료, 더 아름답고 근사한 글을 쓰기위해 문예창작 에 진학, 현재 석사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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