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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에 실린 글방]
 
 
작성일 : 15-04-14 08:11
[이율하] 보람찬 CPR
 글쓴이 : 청양
조회 : 1,710   추천 : 0   비추천 : 0  
119이야기  
 
                                                                                                  이율하.jpg
                                                                                                이 율 하
                                                                                                응급구조사
 
보람찬 CPR
 
 
교육으로 인해 구급대 출동인원의 편성으로 2팀의 구급경방이 한 명 부족한 상황이 발생했다. 2명의 구급대원이 출동해도 응급환자가 발생하게 되면 손이 바쁘고 정신이 없을 때가 많은데 한 달 정도를 혼자서 환자를 처치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혼자서 타게 된 첫날, 인사이동이 있는 날 사건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는 소방의 징크스가 발동할까 전전긍긍하는 와중 아니나 다를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의식이 없다는 출동벨소리를 듣고 황급히 출동했다. 혼잣말로 제발 CPR은 아니길 간절히 빌면서 출동했다. 출동하는 도중에 들려오는 의료지도 무전에는 보호자에게 CPR을 지도했고 급히 출동하라는 무전이 들려왔다.
출동하는 중 무전으로 상황실에서는 삼자통화를 하라고 한다. 신고자, 상황실 의료지도 팀, 출동대의 삼자통화는 정말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필요로 하지 않는다. , 현 상황은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라는 의미다.
구급경방은 나 혼자인데 많은 처치를 해야 하는 CPR 상황이라니.... 구급대원으로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상황이고 경험도 많지만 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다행히 현장은 센터로부터 500M 지점. 삼자통화를 할 겨를도 없이 현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운전 대원에게 들것을 부탁하고 응급처치를 위해 AED를 들고 부리나케 달려 2층 현장에 가보니 보호자인 아내분이 의료지도 팀이 하라고 하는 대로 60대 남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압박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 하는 압박은 압박이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흉곽이 5cm 정도 눌러져야하지만 역시나 압박은 거의 되지 않고 제스쳐만 하는 그런 상황. 환자는 얼굴이 거무튀튀한 색을 띄며 임종호흡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맥박, 호흡, 의식이 없었다. 명백한 심정지 상태였다.
즉시 압박을 시작했고 운전대원이 도착 후 압박을 지시하고 나는 즉시 AED 패치를 붙였다. AED 분석 결과는 VF. 심실세동이다. 심장이 파르르 떨고만 있지 펌핑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들과 대원을 물리고 즉시 150J 쇼크 1회를 실시했고 다시 압박. 조금 후 AED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제세동 불가능 리듬. 모니터 상에는 리듬이 요동치고 있었다. 빈맥이긴 했지만 심장이 펌핑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즉시 맥박과 호흡을 관찰했다. 천만다행으로 맥박도 돌아왔으며 자발호흡도 돌아온 것이다.
급히 보조들것에 환자를 싣고 구급차로 옮겨 병원으로 이송을 시작했다. 리듬은 돌아왔지만 언제다시 심장이 멈출 줄 모르는 상황. 그만큼 모니터로 보이는 심장은 불안해 보였다. 가장 가까운 3차 병원으로 이송을 하려했다. 그러나 보호자는 치료를 받고 있던 서울대병원으로 모시자고 계속 요구를 해왔다. 너무 멀다. 가는 도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설명을 했고 어쩔 수 없이 보호자는 수긍하여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병원 도착 2분전 쯤 보호자의 마음이 바뀌었나보다. 갑자기 다시 서울대병원으로 가자는 것이다.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보호자는 현재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일까? 자신의 남편이 얼마나 위험한지, 11초에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다급한 상태인지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 설득을 하려 했으나 보호자는 너무도 완강하게 서울대병원을 원했다. 할 수 없이 사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좋지 못한 일은 보호자가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받고 가던 길을 돌려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환자상태를 모니터링하며 전전긍긍 제발 별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5km를 가는 길이 천리를 가는 길 마냥 멀고도 험한 듯 느껴졌다. 심장의 리듬은 빈맥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고 너무도 불안해 보였다. ‘나 지금 너무 힘들어. 지쳐가고 있어.’심장이 말하는 듯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환자가 구토를 시작했다. CPR의 부작용인 것일까. 혹시나 가슴압박으로 부러진 늑골이나 갈비뼈가 페를 다치게 해서 출혈이라도 생겼을까 심히 불안했다. 즉시 얼굴을 옆으로 돌리며 산소마스크를 벗기고 구토물이 자연스레 흐르게 하여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조치했다. 다행히 출혈은 보이지 않았고 저녁으로 먹은 음식물 같은 이물질만 구토한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요란하던 싸이렌 소리가 그치고 요동치던 구급차의 움직임이 멈췄다. 멀고도 먼 병원에 도착했다. 천만다행으로 환자의 심장은 버텨주었고 무사히 서울대병원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서둘러 환자를 차에서 내리고 응급실 안으로 돌진하듯 달렸다.
이송 중 무전으로 상황실을 통해 병원 응급실에 CPR환자의 이송을 통보해 놓은 상태라 응급실에서는 환자를 맞을 준비가 된 상태이므로 의료진에게 “CPR환자 왔어요!!”하며 외쳤다.
CPR 베드로 환자를 옮기고 구급차로 돌아오고 나서야 안도의 가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다행이다. 무사히 병원에 와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환자에게 감사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돌아와 주셔서 고맙다고.
다시 생각해도 CPR 할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정신없이 지나간 것만 같다. 그 와중에 제대로 된 처치를 위해선 반복된 훈련만이 답일 것이다.
며칠 후 환자의 상태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호자는 이송했던 구급대원이라는 말에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신다. 남편이 병원에 도착 후 두세 시간이 지난 후에 의식을 회복했고 큰 후유증 없이 퇴원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려 주셨다. 다행이시라고 힘내시라는 말을 드리고 끊었다. 보호자분과 통화를 하니 그 때 힘들었던 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힘은 들지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구급대원으로서 이만큼 보람찰 때가 또 있을까.
<프로필> - 녹번 119 안전센터, 응급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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