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홍 기
한국4-H본부 회장
‘기본 지키기’, ‘안전 캠페인’ 전개로 건강한 세상을 만들자!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48분,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가다가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는 가히 핵폭탄보다 더 큰 위력으로 대한민국을 덮쳤다. 세월호 파편에 가슴을 찢긴 수많은 국민들은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다가, 차오르는 슬픔에 눈물짓다가, 치미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내 탓이라고 가슴을 치기도 하고, 네 탓이라고 삿대질을 해대기도 했다. 이번 참사가 더 참담하게 느껴졌던 것은 발생 원인과 구조과정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에서 드러난 구조적인 ‘후진성’ 문제였다. 이제는 어느 정도 살게 됐다고 조금은 기를 펴고 자부심을 가졌던 우리는 이 엄청난 일을 겪고 나서 ‘먹고 사는 게 다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새삼 갖게 되었다.
모름지기 선진국이란 소득수준이 높다고만 되는 게 결코 아니다. 우리가 중동의 산유국을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국민정신 수준의 그릇이 우리가 누리고 있는 부를 넉넉히 담아내고, 사람들이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 그 물질을 향유할만한 수준이 되어 야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참사를 계기로 ‘국가개조’라는 말까지 나왔다. 물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적폐를 척결할 법과 제도를 비롯한 관행을 과감하게 바꿔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와 함께 우리 스스로 의식수준을 높여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돌아보면 우리 대한민국은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광복으로 찾은 조국은 황폐화되어 있었다. ‘보릿고개’라는 말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제 겨우 한 세대가 지났을 뿐이다. 필자만 해도 어린 시절 지긋지긋한 가난을 잊지 못한다. 충북 영동이라고 하면 지금은 맑고 쾌적한 자연을 자랑하지만 50년 전만해도 가난이 대물림되는 산간의 농촌마을이었다. 이곳에서 필자의 눈을 뜨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한 것은 바로 4-H였다. 지-덕-노-체 4-H는 ‘명석한 머리’, ‘충성스런 마음’, ‘부지런한 손’, ‘건강한 몸’으로 해석된다. 4-H회 활동을 한 선배와 동료 그리고 후배들은 이후 새마을지도자로 활약하기도 했고 각계각층에서 땀흘려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룬 대한민국이지만 사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성장의 이면에는 ‘빨리빨리’와 ‘적당히’ 문화가 양산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세월호에 앞서 우리는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참사를 겪었다. 특히 세월호의 복사판이라고 할 수 있는 남영호가 침몰되었을 때도 울며불며 한바탕 소란만 피우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에 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한 것이다. 이것은 물적기반 양적성장은 이뤘으나 정신기반 질적성장은 따르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4-H를 시작으로 평생 농업-농촌운동을 전개해 왔고, 현재 한국4-H본부 회장을 맡고 있는 필자로서는 4-H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농업의 생명존중과 정직, 부지런함, 공동체의식, 자기주도성을 확산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데 앞장서야 되겠다는 다짐을 스스로 해본다. 또 여기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참여해 4-H를 다시금 제2의 국민운동으로 승화시켜 보자고 호소한다. 4-H활동은 과거의 청소년과 농업-농촌 부흥운동으로서만이 아니라 지금도 농업의 내재적 가치를 실현해 청소년 역량을 높이고 심성을 계발하는데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4-H의 훌륭한 가치와 덕목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다음 두 가지 화두를 제시하고자 한다. 바로 ‘기본’과 ‘안전’이다.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부터 고쳐나가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올해 서울에서 열리는 ‘제1회 글로벌4-H네트워크 세계대회 2014’의 캠페인으로 전개하게 된 것이다.
먼저 ‘기본을 지키는 세상 만들기’를 통해 실의에 빠진 우리 사회에 다시 한 번 ‘희망’의 씨앗을 심기 위한 것이다. 세월호의 비극도 실은 기본을 지키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 이에 4-H네잎클로버 잎을 상징하는 그린하트를 활용해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기본을 지키는 세상’을 만드는 청소년을 통해 우리 사회에 새로운 도약의 동력을 창출하는데 기여하게 되리라 믿는다. 양심 지키기, 본분(책임과 역할) 다하기, 나눔과 이해의 실천, 좋은 먹거리 지키고 나누기 등 기본지킴이 활동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으로 퍼져나갈 때 비로소 선진시민의식이 함양되고 건강한 사회와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세월호뿐만 아니라 전 지구촌에서 매일 끊이지 않는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런 사건 사고의 원인은 생명에 대한 무관심과 인명을 무시하는데 있다. 따라서 ‘안전한 대한민국! 안전한 지구촌!’을 주제로 글로벌4-H세계대회에 맞춰 전개되는 이 캠페인은 그 의미가 크다. 우리 주변에 지켜야 될 생활 속의 안전캠페인은 대략 10가지쯤 된다. 교통안전,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농기계-농약-농작업, 선박, 열차와 지하철 플랫폼, 물놀이, 안전위생, 노동재해, 지역 안전안심생활, 아웃도어 등이다. 청소년과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안전문제를 진단하고 개선하는 실천전략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안전캠페인을 통해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조성된 안전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다양한 분야에서 개선방안이 도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한 신문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모 대학의 외국인 강사가 “(한국민에게)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세월호 애도와 반성만 많았지, 그 뒤 달라진 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얘기가 실려 있었다. 세월호 후에도 여전한 무단 횡단과 난폭 운전, 새치기와 욕설 같은 것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나라가 바뀌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그런 게 안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벌써 세월호 참사 100일을 넘겼다. 필자의 눈에는 운동화 한 켤레가 어른거린다. 신문에 커다랗게 실렸던, 팽목항 부두에 쓸쓸히 놓여 있는 한 켤레 운동화를 찍은 사진이었다. 《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한 어머니가 “아들에게 진작 브랜드 있는 운동화를 사주지 못한 게 한스럽다.”고 울부짖자, 다른 학부모 한 사람이 서둘러 달려가 사다 놓은 운동화》라는 내용의 기사와 함께……. 가슴 짠한 이 기사가 실린 신문을 필자는 손에서 한동안 놓지 못했었다.
그렇다. 다시는 이런 불행과 아픔을 겪지 않으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된다. ‘기본 지키기’와 ‘안전캠페인’은 바로 나부터 시작해 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프로필>
- 1958년 충북 영동군 매곡면 어촌리에서 태어남.
-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수료.
- 한국4-H중앙연합회 3대 회장,
-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초대회장,
- 전통가공식품협회 중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