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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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2-23 23:19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글쓴이 : 해올
조회 : 2,626   추천 : 0   비추천 : 0  
[포이에마] 펌글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에 대하여 1:19-1:42까지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복음의 최고 진수를 담고 있는 요한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에 대해서 자세히, 길게, 언급한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구원사적인 측면에서, 세례 요한은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를 마지막으로 보내신 후, 무려 400여 년이나 긴 침묵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헤롯왕의 지배아래서, 백성들은 안팎으로 수탈을 당해야 했습니다. 와중에 부패한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고, 일상생활은 바리새인들에 의해 제한받고 속박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면 지옥과 같은 고난이 연속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보내신 것입니다. 마태는 당시를 이렇게 전합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마 3:5-6)
  
세례 요한의 입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자신을 찾아온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며 사자후를 발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세도가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군인과 세리들은 낙타 털옷을 입은, 원시인 같은 세례 요한 앞에 엎드려 그의 가르침을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시 헤롯왕도 두려워 할 정도로 세례 요한의 출현은 대단한 사건이었고, 추종자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세례 요한을 찾아와서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 그러자 세례 요한이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요1:20) 그는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였습니다.(요 1:20) 그의 대답에는 한 치의 주저함이나 숨김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다시 묻습니다. “네가 엘리야냐?” 세례 요한이 대답합니다. “아니라.” “그럼 선지자냐?” “아니라.” 대답은 너무나 간결했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도, 선지자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즉각 예수님을 알아보고 말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요 1:30)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요 1:34)
  
다음 날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였던 안드레와 요한과 함께 있다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예수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요 1:36-37) 이는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 요한과 안드레를 예수님께 보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세례 요한을 닮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참 구원자를 만나 그분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그 인생을 결정하는 너무나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처럼 군림하는 요즈음의 많은 목사들의 행태와 그들을 맹종하는 교인들을 냉정히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이는 사람들을 추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아셔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여도 자신을 높이는 사람들의 오류와 왜곡은 필연입니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그 오류와 왜곡의 올무에 걸려듭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인간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따랐음에도, 자신을 결코 높이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훌륭한 세례 요한을 추종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누구보다 열심히 믿고 섬겼던 그의 제자들은 잘못된 길을 갔습니다. 그들의 만찬에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위한 빈 잔이 여전히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오셨음에도...
  
예수님은, 내 생명이 비본질에 탕진되는 것을 멈추게 하고 더욱 의미 있고, 보람 있고, 풍성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 자녀로서의 존엄성과 자유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들은 상황과 사람들의 노리개가 된다.”는 빅터 프랭클 박사의 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성령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존엄성과 자유를 회복하고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아야합니다.
  
세례 요한이나 위대한 하나님의 예언자들 모두 자신을 철저히 가렸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에 세례 요한은 한 마디로 대답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 이것은 세례요한의 부동의 자기 정체성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확립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 정체성을 확립하십시오. 그 일에 목숨을 거십시오. 여러분들은 각자 삶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야 하는 하나님의 자랑스런 자녀들입니다. 가정과 회사와 사회를 살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여러 사람들을 살리는 하나님의 리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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