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추시대에 최초로 패권을 차지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에게는 뛰어난 재상이 있었으니, 바로 포숙아(鮑叔牙)와의 우정이라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성어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관중(管仲)이다. 그는 본래 환공과는 정적 관계였으나, 환공은 포숙아의 고언을 받아들여 그를 재상으로 삼아, 무려 30년 동안 패권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사마천(司馬遷)은 환공과 관중의 위대한 패업에 대해 최초로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단어를 써서 극찬했다. 특히 관중에 대한 사마천의 칭찬은 대단하였다. “관중은 재상이 되어 제나라의 정치를 맡아, 변변치 못했던 제나라를 바다에 있어 재화를 유통하고 재물을 쌓아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병력을 강하게 하여 백성들과 고락(苦樂)을 같이 하였다.(管仲旣任政相齊, 以區區之齊在海濱, 通貨積財, 富國彊兵, 與俗同好惡.)”라고 하였다.
● 사마천은 또한 “(관중이) 정령을 내리면 물이 수원에서 흘러 차차 낮은 곳으로 흐르듯 민심이 그에게 순응하였다. 그래서 (나라에서) 논의한 정책은 알기 쉬워 실행에 옮기기가 쉬웠고, 백성이 바라는 것은 소망대로 들어주었으며, 싫어하는 것은 제거해 주었다. 그리고 정치를 행하는데 화(禍)를 복(福)의 발판으로 삼았고, 실패를 성공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下令如流水之原, 令順民心. 故論卑而易行, 俗之所欲, 因而予之, 俗之所否, 因而去之. 其爲政也, 善因禍而爲福, 轉敗而爲功)”라고 하였다.
사마천은 그리고 환공과 관중의 몇 가지 사례를 든 뒤, “그러므로 주는 것이 바로 얻는 수단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정치의 비결이다(知與之爲取, 政之寶也)”라고 결론을 맺었다. 여기에서 여지위취(與之爲取)란 바로 주는 것이 바로 얻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먼저 양보하고 내주는 것이 결과적으로 얻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라는 것이다.
● 그러면서 사마천이 든 예 중에 한 가지만 언급하면 이러하다. 환공은 당시 북방에서 툭하면 침략을 일삼는 산융족(山戎族)을 정벌하였다. 산융족이란 쉽게 말해, 훗날 여진족 혹은 만주족이라 불리는 부족의 조상이다. 환공과 관중은 회군하는 길에 연(燕)나라에 들렸다. 왜냐하면 산융족이 연나라를 계속해서 괴롭혀왔고, 연나라의 군주 장공(莊公)이 이를 감사하기 위해 연회를 베푼 것이다.
연회가 끝나고 다시 환공이 귀국길에 올랐다. 그런데, 연(燕)의 장공(莊公)이 철군하는 환공을 배웅하다가 실수로 제나라의 국경을 침범하고 말았다. 당장 제나라의 신하들이 이를 문제삼고 나섰다. 왜냐하면 당시의 예법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며, 실수를 범한 측에서 상당한 보상을 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공과 관중은 그 자리에 도랑을 파서 양국의 경계로 삼고 장공이 이미 넘어온 제나라의 땅을 모두 연나라에게 주었다.
● 이 일을 전해들은 다른 제후국은 환공의 덕을 칭송하면서, 환공이 주도하는 천하질서에 편입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사마천이 여지위취(與之爲取)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환공과 관중은 당장 예법을 여겨 난처한 상황이 된 연나라 장공(莊公)에게 선뜻 땅을 떼어주어, 연나라 장공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미리 막아주었다. 즉 미리 양보하고 내주었기에, 진정한 패자(覇者)로서 천하의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우리의 정치는 너무나도 경직되고 얼어붙어 있다.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짜증을 내는 단계를 넘어 혐오하는 단계까지 다달았는데도, 정국은 풀릴 줄 모른다. 대통령은 양보하지 않고 버티고 있고, 민주당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툭하면 길바닥에 나앉아 소위 깽판을 치고 있다. 게다가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대통령 뒤에 숨어 몸보신에만 열중이다.
● 박근혜 대통령 말대로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라는 국민들은 별로 없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시킨 사안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기관에서 벌인 잘못에 대해, 국가의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직접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여지(與之)]가 아니겠는가!
어제는 국회에서 대통령이 시정연설(施政演說)을 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뭔가 얼어붙은 정국을 녹일 만한 해답을 가지고 왔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해답은 결국 여야(與野) 합의를 통해 자신에게 요구하면, 그때서야 들어줄 것이라고 했다. 결국 대통령 눈치나 보면서 몸보신에만 열중인 여당보고 해결하라고, 본인은 한 발 뒤로 물러난 셈이다. 사실상 민주당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 민주당 또한 마찬가지이다. 본인들도 민생(民生)이 우선이라는 데는 공감하는 듯 하다. 그렇다면, 이제와서 대통령 당선 결과를 번복할 것도 아니면서, 이런 문제 가지고 1년 가까이 질질 끌어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친노(親盧)라는 불통집단의 도(度)가 넘은 고집에 휩싸여,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런 정국을 이끌어가겠다는 음흉한 의도가 뻔히 읽혀지고 있다. 양보하지 않는 대통령도 문제지만, 대통령의 양보를 유도할 만한 묘안도 내놓지 못하는 민주당도 문제가 아닌가!
보아하니, 내년 예산안 통과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경제는 점점 나락으로 추락하는데, 정치권에서는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없다. 승자의 양보도 없고, 패자의 승복도 없는 이런 정치문화를 보는 국민들의 가슴은 메어지고 있다. 주변 강국들은 점점 보수화되고 국력신장에 앞장서는데, 우리는 갈기갈기 찢어져 서로 으르렁대고나 있다. 만약 봉건시대라면, 벌써 주변국가들에게 침략의 빌미를 주어 망했을지도 모르겠다.
● 이제 우리의 정치권은 진정으로 여지위취(與之爲取)의 정신을 되새길 때이다. 먼저 양보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내가 양보해야 또한 얻고자 하는 바를 얻는 것이다. 결국 정치란 타협의 산물이 아닌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싸움만 한다면 공멸(共滅) 뿐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지만 성과에는 비용과 대가가 필요하다. 환공이 패자가 된 것은 단지 강력한 군사력만이 뒷받침된 것이 아니다. 먼저 양보하고 내어주려고 했던 그런 양보의 미덕이 천하의 사람들의 가슴을 잔잔하게 감동시켰음을, 우리의 정치권도 마음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이 게시물은 더펜관리자님에 의해 2013-11-20 17:53:14 토론방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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