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웬만큼만 관심을 기우리면 전문가 뺨 칠 정도의 수준이 된다.
과거에는 제한 된 언론보도, TV뉴스, 그리고 극히 적은 전문가들의 비평만이 소위 말하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고 있었다. 물론 책도 있다. 그러나 책은 긍정적인 면이 훨씬 크지만 편향될 수 있는 소지도 많다. (필자가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놈은 책 한권만 읽은 놈이다” 즉 우연히 집어든 책 한권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는 말이다. 고로, 정보도 여러 방향에서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여 판단을 해야 하고, 책 역시 가능하면 많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행히.... 지금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특히 종편방송국이 생긴 덕분에(?) 일반국민들은 거의 정치전문가들 수준으로 올라섰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정치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아차 말실수를 한 번만 하면 여지없이 깨진다.
인터넷 정치 토론방의 숫자도 엄청나다. 여기서 소위 ‘논객’이라는 말도 생겨난다. 논객? 정말 대단한 사회적 발견이며, 보물들이다. 또한 거의 다 아마추어들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현상인가.
논객이, 언론기사를 그대로 옮겨 올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굳이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프로 정치평론가 흉내를 낼 필요도 없다. 이 역시 프로 정치평론가들의 숫자가 무지무지하게 많기 때문이다.
그럼 논객이 해야 할 일 무엇인가?
말없는 다수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풋풋해야 한다.
예언을 하고 싶으면 점쟁이로 나서는 것이 옳다.
예측 마찬가지. 전혀 논리적이지 않으면서 논리라는 단어를 도용하여 예측을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지난 대선을 보자.
1. 당선자 예측
2. 투표율, 득표율 예측 누구나 할 수 있다. 틀려도 욕먹을 일도 아니다. 그러나 거짓말은 용서 못한다.
박근혜 58% 득표로 예측 한 것 틀렸다.
문재인 38% 득표로 예측 한 것도 틀렸다.
투표율 68%로 예측 한 것도 틀렸다.
다만 맞은 것은 확률 50%짜리 박근혜 당선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득표수가 왜 나오나? 실질적으로 둘이 맞붙으면 이긴 쪽이 최다득표, 과반수가 당연한 것 아닌가?
또 있다. 개헌 말이다.
현재 개헌의 큰 물줄기는 대통령 일인에게 집중 된 권력을 어떤 식으로 분권할 것 인가? 그리고 현행 5년 단임제를 유지할 것인가, 유지하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바꿀 것인가이다. 대체적으로 5년 단임을 유지하든지, 바꾼다면 4년 중임제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려있다. ...........
그런데... 느닷없이 대통령제 강화를 주장하고 5년 중임제를 주장한다? 더더구나 현 대통령도 5년 중임이 가능해야 된다고 주장을 한다. 4차원이니 5차원을 들먹거리며..... 이것이 어찌 표현의 자유이며, 특히 바람직한 논객의 자세라 할 수 있나.
더더구나 논객이 무슨 헌법학자인 줄 착각까지 한다. 개헌 말을 하기위해서 헌법을 다 읽어야 하나?
보편타당한 말을 할 줄 알아야 그나마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기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