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펜
 
[토론방]
 
 
작성일 : 14-12-20 23:21
민주주의의 죽음, 헌재의 죽음
 글쓴이 : 또다른세상
조회 : 1,415   추천 : 0   비추천 : 1  
헌법재판소가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 소속 의원들의 국회의원직도 박탈했다. 그런 결정에는 제대로 된 증명도 확실한 근거도 없다. 다수에 거스른다고 소수 정당에 함부로 사형 선고를 내린 꼴이다. 관용과 다원성을 핵심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는 이로써 송두리째 부인됐다. 지금 여기, 해산과 해체의 위험에 처한 것은 수십년 간 힘겹게 일궈온 한국의 민주주의다헌재 결정은 사법사에 남을 큰 오점이다. 법의 칼을 빌린 정치 탄압은 수십년 전부터 있었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의 인혁당 인사 사형이 그러했고, 1959년 이승만 정권이 진보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조봉암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한 일도 있다. 당시 진보당은 정부 부처의 등록취소로 해산됐지만, 1958년의 대법원은 '진보당의 정강·정책은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적어도 이번처럼 정당의 주요 인사와 정당 자체를 억지로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1960년 헌법에 정당해산 제도가 도입된 것도 '민주주의의 적에 대한 방어'보다는 행정부에 의한 등록취소 따위로부터 정당의 존속을 보장하고 '정당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정신은 지금 헌법에 오롯이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통합진보당 등이 대의민주체제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생각과 주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자를 배척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에서 해방된, 민주주의의 징표다. 진보 소수세력에 대한 축출 선언인 이번 결정은 그런 역사의 시계를 되돌린 것이다.

헌재가 이번 결정을 정당화한 논리와 명분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정당해산은 최후의 수단으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제한적으로 적용돼야 할 제도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 헌재는 당 강령 등에선 그런 위험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진정한 목적'이나 '숨은 목적'을 추정해보면 그런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숨은 목적'이야말로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하는데도, 헌재는 구체적 증거도 없이 이들의 주장이 북한의 그것과 유사하므로 북한 동조가 통합진보당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판단'했다. 권위주의 시절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검찰이 펴던 막무가내식 논리 그대로다.

시간에 쫓기듯 1년도 안 돼 결론을 서두른 점도 의아하다. 이석기 그룹의 활동이 잘못이더라도 이를 10만명의 당원을 지닌 통합진보당 전체의 행동과 곧바로 같이 볼 수는 없다. 그런데도 헌재는 이들이 '주도세력'이므로 정당의 활동이라고 곧바로 선언했다. 그들이 실제로 당 전체를 장악했는지, 당 전체가 그 의도대로 움직였는지 증명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단정했다. 그러고선 이들 주도세력의 성향과 활동 등에 비춰보면 '실질적 위험'이 있다는 비약적 논리를 폈다. 형사재판에서 '아르오'의 실체가 인정되지 않았고 내란음모에 무죄가 선고된 상태에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바로 그런 혐의를 이유로 앞질러 한 정당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헌법과 법률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도 의원직 상실까지 선고했으니, 헌법적 판단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는 월권이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입을 피해는 막대하다. 정당의 강제해산으로 민주체제의 중요 요소인 정당의 자유, 정치적 결사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될 것이다. 진보 논리에 찬성했던 많은 이들의 정치적 의사는 위헌이나 종북 따위로 왜곡되고 제도권 밖으로 내쳐질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빚어질 갈등과 대립은 또 얼마나 심할 것인가. 지금은 통합진보당이 쫓겨나지만, 다음은 누가 당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1987년 헌법의 산물인 헌재가 87년 체제의 핵심인 관용과 상대성의 민주주의 정신을 스스로 부정한 상처도 오래 남을 것이다. 8대 1이라는 헌재 재판관의 의견 분포가 우리 사회의 의견 지형을 반영한 것인지를 묻는 헌재 구성의 문제도 불거질 것이니와, 헌재의 존립 근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될 것이다. 헌재가 자신을 자해하면서 한국 민주주의를 저격한 결과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Total 5,685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비추천
5525 대통령중심제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4) 도제 11-04 1674 2 1
5524    맞짱토론? (3) 도제 11-05 1467 0 1
5523 이곳의 관리자는 부처 가운데 토막인가? (4) 도제 11-05 1536 0 1
5522 50대 기수론과 이정현 (1) 앗싸가오리 11-19 1413 2 1
5521 박근혜, 자진사퇴가 맞다. (1) 도제 12-05 1415 1 1
5520 박근혜정권을 타도하자 (1) 또다른세상 12-19 1416 1 1
5519 헌재 재판관 8명 쥐도 새도 모르게 없에 버려… (2) 또다른세상 12-19 1409 1 1
5518 학계 통진당 해산 사회주의 존재할 수 없다는… (1) 또다른세상 12-20 1377 0 1
5517 민주주의의 죽음, 헌재의 죽음 또다른세상 12-20 1416 0 1
5516 전세계는 민족주의시대 거꾸로가는 박근혜 (3) 또다른세상 12-23 1420 0 1
5515 같이 동행 해야할 사람과 그렇지 못할사람 (2) 대박 02-16 1409 1 1
5514 대한민국이 미국의 신무기 실험장이냐? (1) 이어도 03-18 2153 2 1
5513 유승민은 원내대표직를 이쯤에서 사퇴해야 (2) 이성실 07-04 2318 0 1
5512 국민에 예의 없는 유승민은 정계를 떠나야 이성실 07-07 2328 0 1
5511 나라망하게할뻔한 박정희독재 ㄲㄹ 11-27 2550 3 1
5510 불법 폭력시위 근절방안 피노키오 12-03 2289 1 1
5509 근데요 안철수는 중도가 아닙니다 (1) ㄲㄹ 12-18 2005 2 1
5508 독신녀 대통령 국가 망조들 징조 또다른세상 03-09 1597 1 1
5507 조응천과 반기문의 설겆이론 앗싸가오리 02-03 1931 1 1
5506 자객공천론 (1) 앗싸가오리 02-12 1738 1 1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