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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에 실린 글방]
 
 
작성일 : 15-03-09 19:26
[소심향] 골목길
 글쓴이 : 주노
조회 : 1,687   추천 : 0   비추천 : 0  
□ 초대수필  
                                                                                                 소심향.jpg
                                                                                                소 심 향
                                                                                                은평구 의원
 
골목길
내 어린 시절을 떠 올리면, 손금처럼 이어진 골목길에서 부러울 것 없이 당당하던 모습이 보인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2학기에 접어 들 때에 우리 식구는 산골에서 서울 정릉으로 이사 왔다. 당시 공무원이시던 아버지는 선산만 남기고 전답을 팔아 사업을 시작하기로 단호한 결정을 내리신 것은 7남 1녀의 종가집 장남으로서의 역할 때문이셨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작은 삼촌들을 보살피고 또 교육도 시키고자 하신 것이다. 아버지는 당시 최고의 수출 주력 상품이던 앨범 회사를 시작하셨다. 시작한 지 3년 되던 해인 1972년 오일쇼크 회오리바람에 아버지는 쓰러지셨다. 아버지의 빚잔치가 끝나고 우리 식구는 서울 곳곳을 전전했고 나는 6년 동안 초등학교 일곱 군데를 다녔다.
잦은 전학 속에서도 줄반장도 하고 발표도 잘하여 공부를 좀 하는 줄 알았는데, 중학교 첫 시험에 70여 명 중에 48등을 하였다. 객관적인 평가에 나도 그렇지만 집안의 자랑스러운 맏딸에 대한 기대가 있으셨던 아버지께서 성적표를 보시더니 내 이마에 꿀밤을 한 대 주셨다. 몹시 아프기도 했지만 창피하고 속상해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사실 초등학교 때는 안정되게 공부를 할 수 없었고, 성적이 어느 수준인지도 몰랐었다. 전학만 하지 않아도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중학교 때는 아버지께서 경비 일을 시작하시면서 3년 내내 전학이라는 것이 없었다. 또 단칸방이긴 하지만, 양평동 뚝 아래 쪽방에서 대방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기에 환경이 무척 좋아졌다. 상의용사들이 사는 대방동 의용촌도 상당히 열악한 곳이었지만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부촌 같아서 최고급 아파트가 부럽지 않았다. 일단, 공동 수도에서 벗어났고 주인집과 따로 쓰는 화장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곳이 얼마나 포근했던지 저녁이 되면 동생 손잡고 노래 부르며 골목을 누볐다.
좋은 곳으로 이사도 왔고, 할머니의 타이름으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보자고 작정했다. 일단 학교 갔다 오면 부모님이 모두 일터로 가신 방이 내 차지였으니 상을 펴 놓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차차 눈이 맑아지며 수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고민 끝에 담임선생님이신 이순자 선생님을 찾아갔다. 나에게 큰 노트 한 권에 문제와 식을 쭉 풀고 그 노트를 교무실 선생님 책상에 갖다 놓으면 틀린 식을 빨간 글씨로 수정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물어 보라고 하셨다. 조금씩 공부에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또 단칸방이었다. 밤에도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은데 고단하신 부모님께서는 낮에 집중력 있게 하라고 하시며, 시간만 되면 무조건 불을 끄시는 바람에 어느 땐 이불 속에 손전등을 켜고 공부 하다가 잠들기도 하였다.
엎치락뒤치락 학교생활 속에 드디어 중간고사가 끝나고 성적표를 받았는데 17등이었다. 지난 번 성적과 비교해서 내가 가장 많이 성적을 올렸다고 선생님께 칭찬도 받고 얼마나 좋던지 아무도 없는 집으로 달려가는 발걸음은 병정처럼 씩씩했다.
아버지께 자랑스러운 성적표를 휘날리듯 보여 드렸다. 아버지께선 특유의 환한 미소를 얼굴 전체에 지으며 잘 했다고 하셨다. 그 때부터 공부라는 놈과 엎치락뒤치락 씨름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서 더 잊지 못할 일이 생겼다. 어느 날 학교에 쌀을 가져오라고 해서 나도 라면 봉지에 쌀을 덜었다 부었다 하며 가져갔다. 그 쌀은 불우 학우들을 위하여 전교생이 모은 쌀이었는데, 공부처럼 큰 수고도 없이 내가 뽑힌(?)것이다. 방송실에서 이름을 불러 양호실에 갔더니 수북이 넣은 쌀 포대들과 약간은 어색해하며 서 있는 먼저 온 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그 어떤 정황을 볼 것도 없이 저 쌀을 나에게 주겠구나 생각하니 자꾸만 입이 벌어졌다. 좋아하지도 않는 국수를 매끼 먹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방과 후 친구 한 명과 양쪽으로 무거운 쌀 포대를 들고 저만치 집이 보이는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어찌나 기쁘고 신이 나던지 개선장군이 따로 없었다. 엄마라도 있으면 소리라도 막 지르고 싶었다.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생각에 벅찬 시간을 보내고 부모님께 신나서 말씀드렸는데 지난번과는 영 반응이 달랐다.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힘이 없어 보이고 쓸쓸해 보이셨다. 부모님 마음을 실망시킨 나는 그 때 공부를 잘해야 부모님께서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두커니 인생의 골목길에 서게 될 때, 순진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개선장군같이 기뻤던 골목길이 눈에 선하다. 대방동 이후에도 서너 번의 이사도 있었고, 경제 사정이 좋았기도 나빴기도 했었지만, 그 골목길의 씩씩했던 발걸음 행진곡이 내 인생의 발판이 되어 웬만한 고생은 고생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 초년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일부러 하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나에게 있어서는 역시 실 보다는 득이 많았다. 어린 시절 그 기쁨의 골목길은 밝고 씩씩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나를 지켜주고 있다.
 
 
<프로필>
 
- (현) 은평구의회 의원
- 제5대 은평구의회 의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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