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뇌도지(肝腦塗地)란 고사성어가 있다. '간과 뇌를 땅에 쏟아낸다'는 뜻으로 조자룡(趙子龍)이
주군 유비(劉備)에게 한 말이다. 사연인즉 이러하다.
후한말 형주지사였던 유표(劉表)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유종이 정권을 승계했으나 심약하기 그지 없던 그는 조조(曺操)에게 항복하고 만다.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던 유비는 조조와의 정면대결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식솔과 백성들을 이끌고 강릉으로 향한다.
군수품의 보고와도 같던 강릉을 포기할리 없는 조조는 정예병을 이끌고 유비를 추격한다. 유비는 장판(長坂)에서 조조군에게 포위됐으나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다. 허나 아들 유선(劉禪)과 감(甘)부인은 합류하지 못하고 낙오되고 만다.
조자룡은 혈혈단신 적진으로 향해 신기(神技)에 가까운 창술을 뽑내며 마침내 유선을 구해낸다. 헌데 유비는 예상과 달리 "네 놈(유선) 때문에 명장을 잃을 뻔 했구나"라며 포대기에 쌓여 있던 아들을 내동댕이 친다. 조자룡은 자신을 더 귀하게 여긴 주군의 배려에 탄복하며 "제 간과 뇌를 땅에 쏟아내더라도 주군의 은공을 갚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정현 홍보수석에 대한 설왕설래(舌往舌來)가 재미있다. 포문은 진중권 교수가 열었다. 그는 이정현의 언급을 접한 뒤 "마치 내시(內侍) 같다"며 비아냥댔다. 이에 질세라 이정현은 "난 내시가 아닐 뿐더러 허위사실을 가지고 남을 비방하면 나중에 그분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라며 진중권을 간접 질타했다.
사태가 장군,멍군으로 끝나나 싶더니 진중권은 "내시가 아니면 상궁(尙宮)이냐"며 전선을 이어갔다. 이정현의 재반격을 떠나 '귀태,하야,암살'이란 단어가 난무하고 있는 요즘 정치판과 달라 해학(諧謔)마저 느껴진다.
진중권의 내시 운운은 이정현의 야무진 대통령 엄호(掩壕)가 내시에 비견될 만큼 맹목적(?)이라고 언급한 것일 게다. 실성한 자가 아니고서야 엄연한 가장에게 남자 구실을 포기한 내시와 비교한다는 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이정현의 대응도 일리가 있다.
내가 볼때 이정현은 내시가 아닌 조자룡이다. 이정현은 쉬운 길을 마다하고 가시밭길을 간 사람이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光州)에 단기필마(單騎匹馬)의 정신으로 출마했지만 석패했다. 그가 우직한 정치인이 아니였다면 그같은 모험을 했겠나. 더군다나 생긴 걸 봐도 어디가 내시인가!
조자룡이나 내시나 주군에게 헌신해야 하는 책무는 동일하다. 다만 이정현은 홍보수석이지만 엄연히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단언컨데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정치 역량은 빙산의 일각(一角)에 불가하다. 내시보다 조자룡에 가까운 이유다. 두고 보면 안다.
<휘모리>